영종도에 유배된 독립운동가. 이동휘와 계봉우

박윤설
2022-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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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 중 하나가 인천 국제공항이다. 국내외 여행객들로 붐비는 대한민국의 관문. 뭍에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 가려면, 인천대교나 영종대교를 건너야 한다. 지금은 영종도라는 거대한 섬이 되었지만, 공항이 들어서기 전에는, 영종, 용유, 삼목, 신불, 4개의 섬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들 4개 섬을 하나로 묶어 매립해, 공항을 건설한 것이다.


사시사철 사람으로 혼잡한 영종도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유배지였다는 점에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다. 알려진 바로는 영종도 예단포에서, 독립운동가 계봉우가 1년여 유배생활을 했고, 그보다 먼저 영종도 건너 무의도에서, 이동휘가 유배를 살았다. 이동휘는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무의도 유배형을 받았고, 계봉우는 1916년을 영종도에 갇혀 지냈다.


이동휘 선생의 무의도 유배 이야기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도 나온다. 백범은 안악사건을 설명하면서, '이동휘,이승훈,박도병,최종호,정문원,김병옥 등 19인은 무의도, 제주도,고금도,울릉도 등으로 1년 유배가 결정되었다'고 사건 결과를 썼다. 누가 무의도에 유배되었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요즘 무의도 주민들은 독립운동가가 무의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다는 사실도 잘 알지 못한다. 용유도와 무의도 얘기를 다룬 어떤 향토지에서는 이동휘가 무의도에서 은거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유배와 은거는 전혀 다른 말이다.


이동휘는 무의도 유배가 그렇게 낯설지 않았을 듯하다. 무의도에서 가까운 강화도에서 오랫동안 생활했기에, 강화도의 지인들이 일제의 눈을 피해 무의도로 찾아왔을 가능성이 높다. 함경남도 단천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이동휘는 1895년 한성무관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후, 강화도 진위대장이 되었으나, 1905년, 을사늑약 체결과 함께 사임했다. 곧바로 강화도에서 육영사업을 벌이면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강화도 의병활동에도 깊숙이 개입했는데, 이때 유배처분을 받은 듯하다.


1913년에는 러시아 연해주로 옮겨, 만주와 러시아의 민족운동 세력을 규합, '대한광복군 정부'를 조직했다. 이상설에 이어 제2대 정도령을 맡기도 했다. 공산당 계열 독립운동 조직을 이끌던 이동휘는, 1935년 1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병사했다. 당시 <동아일보>는 보름이 지난 1935년 2월 15일 자에 '이동휘 씨 장서'란 제목으로 63세를 일기로 별세한 사실을 전하면서 애도했다. 이동휘의 애국혼은 강화에서 응축되었으며, 무의도 유배 기간에 더욱 농익은 것으로 보인다. 이동휘를 말하면서 인천을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인천 독립운동사에 빠져 있는 인물, 계봉우. 그에 대하여도 우리는 좀 더 진지하게 알아봐야 한다. 계봉우라는 인물이 그저 러시아 방면에서 국사학자, 국어학자, 민속학자, 교육자, 언론인 등으로 활동한 애국지사 정도로만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함경남도 영흥 출신인 계봉우는 1911년 1월, 이동휘와 함께 간도로 이주해 교편을 잡았다. 그 뒤 연해주로 옮겨 '권업신문' 기자와 대한 광복군 정부의 비서로 활동했다. 1916년 11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국내로 구인됐고, 영종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1917년 12월, 석방된 뒤 고향인 함경도 영흥에서 거주 제한 조치를 당했다. 1919년 초에는 3·1운동을 준비하던 인물들과 긴밀히 접촉하면서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계봉우의 유배생활은 제대로 드러난 자료가 없다. 그의 자서전 《꿈 속의 꿈》에 일단이 보일 뿐이다. 계봉우는 유배지 예단포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했지만, 일제가 이를 허락하지 않아, 뱃일 막노동으로 밥벌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노동을 잘 해내지 못하는 그를, 예단포 사람들이 도왔고, 계봉우는 그 내용을 자서전에 기록해 두었다.



* A.I 더빙 음성은 <두빛나래 그린리더 프로젝트>에 참여한 인천남부교육지원청 그린리더 학생들이 제작한 콘텐츠입니다.















저자: 정진오

출판사: 도서출판 가지

책정보: https://han.gl/LDCaw

* 저자와 출판사 동의를 얻은 콘텐츠입니다.


인천은 의미심장한 역사지대다. - 백범 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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