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으로 갈라진 미술계의 최고봉. 김은호와 황영준

김민준
2022-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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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는 '만수대 미술관'이라는 이름의 북한미술 전문 전시공간이 있다. 50대 초반의 중국인 미술관 대표는 오랫동안 북한의 미술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조선족이면서, 북한에 경제적 영향력이 큰 부모를 배경 삼아 스무 살이던 1988년부터 북한 사업에 뛰어든 그는, 경제 관련 사업으로 시작해, 점차 문화예술 분야로 외연을 넓혔다. 그의 미술관에는 북한 유명 작가의 작품이 수천 점 소장되어 있다. 몇몇 화가에 대해서는, 그림 인생 전반을 살필 수 있을 만큼 많은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만수대 미술관의 대표작가 중 화봉 황영준이 있다. 충남 논산 태생인 황영준은 조선의 마지막 어진화가로 불리는 이당 김은호의 제자다. 운보 김기창, 월전 장우성 등과 함께 이당을 사사했다.


황영준과 김은호를 이어주는 것이 인천이다. 인물화의 최고봉 이당은 인천 관교동에서 태어났다. 인천관립 일어학교에서 수학한 이당은 측량기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고서 베끼는 일을 하면서 빼어난 그림 실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묘사력이 뛰어난 그에게, 대표적 친일 세도가 송병준이 초상화를 맡겼다. 이후 고종과 순종의 초상을 제작하는 등, 당대 인물화의 대표작가로 부상했다.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도 붓을 놓지 않았다는 이당은, 후진 양성에서 개인의 품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고 한다. 준엄한 이당의 예술관이 황영준의 그림 세계를 열어 젖혀준 것이다.


황영준은 1950년, 6·25전쟁이 나자, 북으로 건너간 월북작가다. 북에서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을 정도로 작품 세계가 우뚝한 그의 활약상은, 만수대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월북하자마자 종군화가로 참여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평양미술대학 교수로 활동했다. 금강산 그림도 많이 그렸는데, 세상을 뜨기 1년 전인 2001년에는 《금강산 화책》이라는 화보집을 냈다. 화책 첫 장에는 이렇게 썼다. '자연과 생활에 대한 고상한 미는, 용암처럼 솟구치는 열정과 지향이 없이는 창조되지 않는다.'


황영준은 2002년, 남쪽에 두고 온 가족들과 상봉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고 말았다. 황영준과 이당이 인천을 매개로 연결된다고는 하지만 이당은 친일, 황영준은 월북이라는 꼬리표가 있어, 가깝고도 먼 관계로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2020년 1월, 마침내 인천에서 대규모 황영준 전시회가 열렸다. '봄은 온다'라는 타이틀을 달고, 한 달 넘게 열린 전시회에는 화봉의 작품 200여 점이 선보였다. 남한의 막냇동생과 막내 딸을 비롯한 가족들이 인천으로 달려와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인천은 유작으로 돌아온 황영준과 그의 가족을 연결시켜 준 상봉의 공간이 되었다. 남과 북의 두 거장 이당 김은호와, 화봉 황영준이 작품으로 인천에서 다시 만날 날이 왔으면 좋겠다.



* A.I 더빙 음성은 <두빛나래 그린리더 프로젝트>에 참여한 인천남부교육지원청 그린리더 학생들이 제작한 콘텐츠입니다.















저자: 정진오

출판사: 도서출판 가지

책정보: https://han.gl/LDCaw

* 저자와 출판사 동의를 얻은 콘텐츠입니다.


인천은 의미심장한 역사지대다. - 백범 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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