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근대 문화로 읽는 '한국 최초 인천 최고' - 이발사와 미용사

김병섭
2022-02-22
조회수 283

이발사와 미용사 



이발점 광고


 인천에 있는 이발점에 대한 광고가 『만세보』 (1907. 3. 21)에 실려 있다. 인천 소재 이발점의 독자적 광고가 아니라 서울 이발점과의 공동 광고이다. 인천 조계에 위치하고 있던 종리이발점은 ‘맛사-지法구리무' 라는 ‘美顔術’뿐 아니라 ‘衛生婦人이 洗髮' 을 해주던 곳이었다. 물론 화장품은 '米國에셔 輸入한것' 이기에 '毛髮의 光라을 生’ 한다며 광고를 하는 것을 보건대 요즘의 풍경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이발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일정한 자격을 갖추어야 했는데 ‘이발사시험제'를 통해야 했다. 이발업에 종사하고 있다 하더라도 시험을 거쳐 자격을 얻어야 했지만 특히 조선인은 시험에 응시하기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제물포청년회에서 '아직 理髮試驗에 人格되지 못한 當업자들을 모아 강습하기로한(『동아일보』, 1924. 2. 19)’ 경우를 통해서 익히 짐작 할 수 있다. 

 인천 최초의 미용사는 누구일까. 어디에도 제대로 남은 기록은 없으나 『인천석금』에는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인천 최초의 미용 기술을 연마하여 미장원의 원조로 등장했던 미용사 심명숙 여사는 인천 갑부 심능덕 씨의 귀여운 따님이고, 현 평화공사 심의균 씨의 누님이다. 이분은 인천뿐만 아니라, 일본에까지 소문난 미인이었다. 일본 잡지사 '모단 니뽄' (현대 일본)에서 미인선발대회를 했을 때, 한국 여성으로 3등에 입상한 인천이 낳은 국제 미인이었다. 심 양에게 는 구혼자가 많았으나, 숙명적 배필은 얌전하고 정직하며 지금까지 술과 담배를 못하는 귀공자 박정규 군에게로 낙착되었다." 

 『개항 후 인천 풍경』에는 “1930년대 후반에 경동에 대동미장원이 문을 열어 처음으로 파마머리를 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아마도 이것이 심명숙의 미장원이 아닌가 싶다. 


이발소 전경 


 인천에 미용학원이 정식으로 인가가 난 것은 1949년 10월경이다. '인천미용학원’ 이 그것인데 초대원장은 미용계에 조예가 깊었던 염관분 씨였다고 한다. 미용사의 경우 최초의 미용학교는 1928년 11월 경성에 설립된 '경성미용학교’ 였다. 당시 미용실은 요금이 비쌌기 때문에 일반 민중들이 다니기는 무리가 있었으며, 주요 고객은 기생과 여염집 부인, 여교사 등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 이르러 이화학당의 학생들의 단발이 유행하면서 미용실에 출입하는 여성층이 다양해지기 시작하였다.


2 0

Tel.032-765-0261
E-mail. 1883@cartoonfellow.org
Addr. incheon, Korea

Hosting by I C.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