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근대 문화로 읽는 '한국 최초 인천 최고' - 부립 공설 목욕탕

김병섭
202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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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립 공설 목욕탕



 한증막이라는 일종의 대중 목욕 시설이 일찍이 경동과 금곡동에 자리를 잡고 있었으나 한국인 마을에 공동 목욕탕이 생긴 것은 1923년에 이르러서였다. 경동의 서탕과 화수동의 부영목욕탕이 그것이다. 『인천향토지』에 의하면 그 무렵 부에서 직영하는 부영목욕탕을 가진 도시는 평양부밖에 없었는데 인천에도 드디어 부영목욕탕이 생긴 것이다. 


부립공설목욕탕


 이후 부내에 있는 목욕탕의 수는 일본인측 12개, 조선인측 5개, 중국인측 1개로 합계 18개였는데, 부에서 운영하는 만큼 입욕료는 일반 목욕탕보다도 훨씬 싸게 2전을 기준으로 했다. 

 『매일신보』 (1923. 11. 11)에 “인천 외리 188번지에 신축중이던 목욕탕 서탕은 공사 드디어 준공되고 제반 설비도 다 마치었으므로 작 8일부터 개업하고 자축하기 위하여 개업 당일은 무료로 입욕케 하였는데...” 라는 기사가 있다.

 이보다 앞선 1918년 8월 7일자 『매일신보』에도 “인천부 용리 209번지 목욕탕에서 불 때다가 굴뚝이 불완전하여 불똥이 지붕에 뛰어 대화가 될 것을 외리파출소에서 달려와...” 운운하는 목욕탕에 관련한 재미있는 기사가 보인다. 

 1949년에 이르러 화수동에 있던 기존의 공설목욕탕을 쇄신하고자 인천시보건후생협회에서 체신부에 1백만 원을 요구한 적이 있는데 이 목욕탕이 바로 부영목욕탕이다. 그래서 우물을 파기 위한 계획을 세웠으며 이에 따라 주민들의 기대가 대단했다는 기사도 눈에 띈다.



(전) 화수동 부영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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