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근대 문화로 읽는 '한국 최초 인천 최고' - 경인기차 통학생들의 모임 한용단

김병섭
2022-02-22
조회수 145

경인기차 통학생들의 모임 한용단



 인천 최초의 학생 조직은 1911년경에 결성된 경인기차통학생 모임인 한용단을 그 기원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천에서 서울로 기차 통행이 시작된 시기는 대략 1910년 무렵 부터이다. 이 무렵 인천의 인구는 3만 명이 넘었는데 보통학교 이상인 학교가 인천상업학교 하나밖에 없었다. 이런 여건과 경인 간의 기차 개통으로 불과 50분 거리의 서울로 진학이 용이했을 뿐 아니라 학생용 ‘파스' 라고 부르던 전기통학권의 가격도 1개월 1원 50전, 3개월 3원으로 매우 저렴했다.


한용단


한용단 기사


거기에 높은 교육열이 기차 통학을 가능하게 했다. 다시 말해서 1883년 인천 개항과 함께 서구 문물의 도래와 더불어 각지에서 모여든 객주, 상인 등 수완이 좋고 학식과 견문이 넓은 사람 들만이 부를 쌓고 명성을 얻는 상황에서 인천으로 이주한 1세대들이 자신들의 부를 물려줄 2세들에 대한 교육을 위해서도 수도 서울의 신식 학교를 선택했다. 

 아무튼 3·1 만세 운동 이후 민족 해방 의식 고취와 더불어 한용단의 출발을 알리는 신문 기사가 나올 정도로 청년 운동에 큰 관심과 기대를 가졌었던 것이다.

다는 『매일신보』 (1919. 11. 13) 기사가 그것이다. 


 한용단의 회원이었던 고일의 “한용단의 어머니격인 친목회는 인천의 문학청년을 아들로 탄생했으니 운동 경기를 외피로 한 그 핵심은 민족 해방 정신을 내포한 문학운동으로 전개했었다”는 회고와 “작년봄에 셰워... 그 당시에 만세 소요로 인하야 즁요한 임원들은 모다 텰창 아뢰예” 갇히기도 했을 정도로 이 단체는 민족 해방 정신을 내포한 문학 운동을 전개하는 데 목적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1920년대 초반 인천지역의 청년운동은 엡윗청년회 · 인배회 · 한용단 등을 중심으로 강연 · 토론 등을 통한 지식 계발, 체육 활동을 통한 체력 증진, 풍습 개선 등의 활동을 주로 하는 민족개량주의적 청년 운동이 주류를 이루었다.”는 『인천시사』의 기록으로도 한용단의 탄생과 역할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기차통학생과 한용단의 멤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유섭, 갈홍기, 조진만, 임영균, 홍이표, 최영억, 장대진, 강흥석, 진종혁, 박태성, 서정익, 임종성, 임정록, 이상태, 이상용, 이극남, 고일, 한만억, 박칠복, 이인학, 강신혁, 이비도, 이대근, 심의균, 차태열, 이형식, 소희련, 최봉기 등이 초기 통학생들이었다. 이들보다 몇 년 밑으로 신태범, 이유선, 배인복, 장영순, 박갑봉, 최삼 풍, 장극, 김동석, 이석범, 박염진이 뒤를 따랐다. 초대 경인기차 통학생 회장은 곽상훈이 맡았다. 여성으로서는 서상집 감리의 딸 은주, 이도라 등이 처음으로 기차 통학을 해서 화제에 올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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